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주인공 서희와 등장인물들이 살던 집. 그동안 하동을 대여섯 번 들르면서도 한 번도 찾지 못했다가 이번에 최참판댁을 가볼 수 있었는데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 최참판댁이란 고택이 원래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양반집이어서 그 저택을 소설의 주 무대로 삼은 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고서야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참판댁이 만들어진 것은 2001년. 90년대 후반 하동군의 한 공무원이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평사리에 최참판댁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군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쩐지 양반집이 마을 한 가운데가 아닌 산중턱에 위치해 있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더군요. 원래 이곳은 집이 있던 곳도 아닌 대밭이었다고 하는데 그랬던 것이 한 공무원의 제안으로 하동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TV드라마 ‘토지’의 세트로도 활용되었구요. 아무튼 있는 관광자원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곳이 많은데 그 당시 소설속의 내용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공무원이나 그것을 받아들여 훌륭한 관광지로 만든 하동군... 박수를 받을 만합니다.
옛날 사대부가에서는 저택의 앞마당을 크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최참판댁도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최참판댁을 찾은 아이들이 투호놀이도 할 수 있고, 전통놀이도 배울 수 있습니다.
최참판댁 행랑채 앞에 서면 솟을대문이 보입니다. 솟을대문은 행랑채나 문간채를 양쪽으로 두고 대문 있는 곳을 한껏 높여 그 집의 권위를 나타내는데, 솟을대문의 높이로 그 집의 권세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죠. 조선시대 전기만 해도 이 솟을대문은 사대부집에서만 만들 수 있었지만 후기에는 그것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솟을 대문의 처마 밑 나무를 보면 꽃잎 모양이 보입니다.
이것을 그려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답은 집이 잘 되라 비는 것. 이것은 불로초로 집안에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나 개업을 하면 문에 북어를 달아놓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입니다.
행랑채입니다. 최참판댁은 99칸 집. 여기서 한 칸은 방 하나의 양쪽 기둥과 기둥사이를 말하는데, 옛날 머슴들이 생활했던 행랑채를 보면 방이 줄지어 있습니다. 여기서 줄행랑친다란 말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도망친다는 줄행랑과 줄지어 있는 행랑채...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두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큰 집을 관리하려면 노비의 숫자가 많아야 하는데, 이들이 사는 행랑도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행랑이 줄처럼 늘어서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줄행랑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렇듯 원래 줄행랑이라는 말은 세도가 대단한 지역 유지, 일종의 권력을 지닌 부자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줄서고 있는 권력의 판세가 바뀌거나 집안이 몰락하여 줄행랑 있는 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어려운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할까요? 도망쳐야겠죠. 그래서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줄지어 있는 행랑채를 보면 특이하게 한 칸 나오게 만든 방이 눈에 띕니다.
사대부가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데요,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세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이곳은 은퇴하고 유람하는 식객, 선비들이 묵어갈 수 있게 한 방입니다.
그러니까 양반을 하인들이 지내는 공간에서 같이 지내게 할 수 없다 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죠.
안채로 들어가볼까요?
안채로 들어가기 전 중문채가 있습니다. 이 중문채는 곡식등을 저장하는 창고 역할도 하지만 여자들이 생활하는 안채를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대문인 솟을 대문에서 중문채의 문을 비껴놓아 만든 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네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그것은 여자들이 생활하는 안채의 모습을 바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솟을 대문에서 안채를 보면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채 안방에서는 솟을대문을 드나드는 모습이 다 보인다는 것. 위의 사진을 보면 중문채 문을 통해 솟을대문 밖의 모습도 보이죠? 최참판댁을 찾으시면 정말 그런가 안 그런가 한 번 안채에서 솟을대문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안채는 여자의 공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생활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남동여서,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에서 생활했다고 하는데요,
안채를 여자의 공간이라고 했는데, 그럼 부부가 살 때 남편은 이곳에서 같이 지내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남편은 사랑채에서 지냅니다. 잠도 따로 자구요. 그러다가 손 없는 날, 좋은 날이라고 받은 날이 되면 남편이 몸종을 불러 “오늘 안방마님에게 00시에 간다고 전해라” 하고 밤이 되면 건너가 동침을 했다고 합니다. 자손이 귀했던 조선시대, 좋은 자손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소설 ‘토지’에서 주인공 서희가 생활했던 별당채입니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남녀칠세 부동석. 7살이 되면 어머니와 떨어져 나와 이 별당채에서 유모와 생활했다고 하는데, 규수가 지내는 곳이니 규채라고도 합니다.
이곳에서 연못을 볼 수 있는데, 담 안에 있는 연못이라 연담이라고도 한다네요.
그런데 연못을 4각으로 만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다섯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해서 4각형은 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땅에 뿌리를 둔 소나무가 가지를 하늘로 뻗어 땅의 일을 하늘로 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물론 연못을 만든 이유는 화재가 났을 때 불을 끄는 방화시설로도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최참판댁을 찾으시면 낮은 굴뚝을 보게 됩니다. 집 뒤에는 높은 굴뚝이 있는데 왜 이 굴뚝은 이렇게 낮게 만들었을까요? 여섯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보릿고개 때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곤란을 겪으니 양반집에서도 마을사람들의 배고픔을 의식해 낮은 굴뚝이 있는 아궁이에 밥을 해 연기가 바닥에 깔리게 했다는 것인데... 과연 그랬을까요? 저는 당시 양반들이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같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병충해가 올라올 때 낮게 깔리는 연기로 병충해를 막는 역할도 했다는데, 이것도 별로 수긍은 안 가지만 그래도 앞의 이유보다 차라리 이게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원으로 가면 장독대가 나옵니다. 액막이 하는 금줄도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이곳은 시집 온 며느리가 시집살이의 설움을 달랠 수 있는 곳이죠. 그리고 어머니가 새벽에 정안수를 떠놓고 멀리 있는 자식이 잘 되라고 비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달랑 물만 올려놓고 비는 게 의아했더랬습니다. 물에 비는 것일까? 아니면 신에게 물만 달랑 바치는 것일까요?
일곱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물을 떠 놓으면 그 물에 달이 비치죠. 그 달에 바람을 빌었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같죠?
후원 뒤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곳에 4대까지 위패를 모셨다가 제사 때 그 위패를 안채나 사랑채로 모셔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집을 나가고 들 때 이곳에 들러 인사를 드린 후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조상을 섬기는 효의 정신을 잘 볼 수 있는 곳, 지금은 어떤가요? 부모가 들어와도 방에서 스마트폰만 보는 아이들이 많죠?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사랑채로 가볼까요? 남자의 공간사랑채로 가는 길, 특이한 건 담이 낮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 남편이 안채를 오가기 때문에 이것을 내외담, 눈썹 모양을 하고 있어서 눈썹담이라고 한다네요.
사랑채 뒤엔 뒷채가 있습니다. 곳간열쇠를 며느리에게 물려주면 집안살림에서 은퇴한 노부부가 이곳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노부부가 살기 전이나 부모님이 안 계신 경우 이곳에서 지내는 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여덟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답은 첩입니다. 축첩제도가 있었던 조선시대, 첩이 있는 경우엔 이곳에서 애첩이 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자의 입장에선 안채의 본처 눈치 안 보고 왔다 갔다 하기 편하니 좋았겠죠?
사랑채입니다. 사랑채는 남자의 공간으로 남편이 생활하고, 또 손님들이 찾아오면 맞이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최참판댁을 찾으시면 이 누마루에 꼭 올라 앉아 보시기 바랍니다. 최참판댁에서 좋은 기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 세 곳 있는데, 그 중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누마루를 포함한 나머지 두 곳은 어디일까요? 아홉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답은 솟을대문, 별당채 연못, 그리고 이 누마루입니다. 세 곳 중 가장 좋은 곳이 여기라는데요, 이 누마루에 앉아 보면 백운산이 보입니다. 지리산에서 백운산이 보이는 곳이 최고 길지라 하고, 남쪽 지리산에서 백운산 정상이 보이지 않으면 명당도 좋은 절터도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백운산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이 좋은 곳이겠죠?
더구나 마루 장식에 구름, 용을 만들어놓았으니 구름을 타고 떠 있는 신선이 된 느낌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가 이뤄진다고 하니 소원을 빌어보시는 것도 좋겠죠?
이렇게 최참판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동에 가시면 꼭 최참판댁에 들러 그 이야기들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