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청 바로 옆에 강진군에서 복원해 놓은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
김영랑 시인은 ‘북도에 소월, 남도에 영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말을 아름답게 시로 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인데요...
1919년 3.1운동 때 휘문의숙에 다니던 선생은 독립선언문을 구두 안에 숨키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검거되어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김영랑선생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함께 겪었는데요,
더 큰 아픔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그해 9월
전쟁중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죠.
안채입니다.
큰 방은 선생의 아버지가 거처한 곳이라 하고,
왼편 중마루가 있는 작은 방에 영랑선생이 결혼 후 지냈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랑채는 선생이 주로 작품활동을 하시던 공간.
이곳에서 그의 주옥같은 시가 쓰여졌다고 합니다.
생가 곳곳에 그의 시를 적어놓은 돌비석들이 찾은 이들을 반갑게 맞습니다.
그의 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일텐데요,
이 유명한 시가 쓰레기통에 들어갈 뻔했다는 걸 아시나요?
1930년대 초 시 창작대회에서 영랑은 모란을 보며 시를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었던지 공개도 하기 전 그 시가 적힌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던 것이죠.
그러자 춘원 이광수가 그걸 왜 버리냐며 달라고 해 그 자리에서 시를 크게 낭송했고,
그 시를 들은 이들이 박수갈채 보냈다는 이야깁니다.
(출처 – 아버지 그립고야 : 김영랑선생의 3남 현철씨가 쓴 책)
이렇게 우리 문학사에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랑을 만날 수 있는
영랑생가는 영랑의 시를 아는 이들에겐 의미 있고 또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소월이고 영랑이고 시인을 모르는 아이들에겐 분명 지루한 곳입니다.
반가운 시가 적혀있는 시비도, 그가 살았던 생가도, 그의 얼굴도....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게 생겼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이제 그만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좀 더 있다가 가자’고 떼를 쓸 것 같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포켓몬 고’라는 게임 때문입니다.
‘포켓몬 고’는 포켓볼을 던져서 몬스터를 잡는 게임. 요즘 그야말로 전국에서 열풍이죠.
스마트폰의 증강현실을 이용한 재미있는 게임인데요
다양한 포켓몬을 잡기 위해선 증강현실 속 곳곳에 있는 포켓스탑에서
볼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포켓스탑이 대도시에는 2~30여미터에 하나씩 있는 곳도 있을 정도로 많지만 지역에선 포켓스탑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진 영랑생가를 찾았더니... 오호라. 포켓스탑이 세 개나 모여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 하죠?
포켓스탑에서는 한 번 볼을 공급받으면 5분간 기다려야 다시 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요,
영랑생가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 돌려서 볼을 받게 하고,
5분 기다리는 동안 영랑생가를 둘러보면서 영랑선생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또 볼을 공급받게 하고, 다시 5분 기다리는 동안 마당에서 뛰어 놀게 하고,
영랑생가 뒤편으로 이어진 세계 모란공원도 찾아가 걸어보게 하고,
그러다 영랑생가 바로 옆에 있는 시문학파기념관도 찾아가 보게 하면
‘포켓몬 고’ 때문이라도 아이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이 될 겁니다.
어떠세요? 2017년 영랑생가를 찾으시면
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의 싯구처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은... ‘
그런 아이들의 웃음도 가득할 것 같습니다.
2017년 강진방문의 해.
강진을 찾으시면 꼭 들러보셔야 할 곳.
이제는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곳, 영랑생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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