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산은 안성에서 남쪽으로 약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산. 산림청에서 선정한 우리 200대 명산 중 하나로 산림청에서는 '문화 유적지가 살아 있는 산'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운산 정상으로 가는 데는 여러 길이 있지만 산 아래 자리잡은 청룡사에서 오르는 길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습니다.
청룡사는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오는데요, 원래 청룡사는 1265년에 명본대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였는데, 1364년에 나옹화상이 중창을 했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나옹화상이 이 절을 일으킬 때 푸른 용이 구름을 타고 나타나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고 산 이름도 서운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나옹화상이 이 절을 일으킬 때 푸른 용이 구름을 타고 나타나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고 산 이름도 서운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시를 지은 나옹 스님. 이 스님의 싯구처럼 절은 평지에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는 모습처럼 고즈넉하게 앉아있습니다.
청룡사에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 많은데요, 먼저 이 사찰의 대웅전은 보물 제 8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에 가 보면 배가 불뚝 튀어나오고, 뒤틀어진 소나무로 만든 기둥이 눈길을 끕니다.
대웅전 앞에 놓여있는 괘불대는 깨져있지만 삼층석탑과 함께 오랜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보여줍니다. 괘불대는 당간지주와 모양이 비슷해 당간지주로 아는 분이 많지만 이것은 괘불을 걸기 위한 괘불대입니다. 당간지주는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절의 종파를 표시하는 깃발이나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걸었던 걸대이구요...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59호인데요, 세련되거나 정교하지는 않지만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이 더 정겹습니다.
범종각에 있는 청룡사 동종은 보물 제 11-4호로 조선시대 숙종때 승려이자 종을 만드는 장인인 사인비구가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인비구는 신라종의 제조기법을 바탕으로 종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그의 작품 8구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청룡사를 둘러보고 서운산 정상을 가는 길은 임도. 산림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도로인데, 임도 옆으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가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보는 재미도 좋고, 기분도 상쾌하게 합니다.
청룡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 은적암이 나옵니다.
여기서 서운산을 찾은 많은 이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고 땀을 식혔다가 가는데요, 이곳은 고려 태조가 3일간 은거하며 기도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서운산을 찾은 많은 이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고 땀을 식혔다가 가는데요, 이곳은 고려 태조가 3일간 은거하며 기도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자의 대웅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거의 다 허물어졌기 때문인데요... 2016년 초까지만 해도 한옥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던 이곳이 왜 이렇게 됐을까 봤더니 태풍때문인지 큰 참나무가 쓰러지면서 대웅전 건물을 덮쳤다고 합니다.
거의 다 허물어졌기 때문인데요... 2016년 초까지만 해도 한옥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던 이곳이 왜 이렇게 됐을까 봤더니 태풍때문인지 큰 참나무가 쓰러지면서 대웅전 건물을 덮쳤다고 합니다.
은적암에서 정상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서운산은 청룡사에서 정상까지 2시간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데, 길이 가파르지 않고, 가족들이 산책하듯 걸어 오르기 좋습니다. 다만 은적암에서 정상까지 길이 경사가 있어 조금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산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랄까요?
서운산은 청룡사에서 정상까지 2시간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데, 길이 가파르지 않고, 가족들이 산책하듯 걸어 오르기 좋습니다. 다만 은적암에서 정상까지 길이 경사가 있어 조금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산에 비하면 애교수준이랄까요?
나무를 보며 꽃을 보며 천천히 오르다보면 서운산 정상이 나옵니다.
해발 547미터의 높지 않은 산. 하지만 안성평야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래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해발 547미터의 높지 않은 산. 하지만 안성평야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래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정상 바로 옆 바위에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작은 나무가 우리를 맞는데요, 그 나무를 보며 뿌리 내리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운명을 타고났길래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을까? 넓디 넓은 흙바닥을 놔두고 하필 물도 없는 바위에... 그 모습을 보니 살아낸다는 건 참으로 힘들지만 소중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에 좌성사를 들렀습니다. 좌성사는 지어진 지 백 년 정도.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서운산을 찾는 이들이 고마워하는 곳입니다. 점심 때 산을 찾은 이들에게 국수를 무료로 공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언제 점심 때 들러 국수도 맛봐야겠지만 대웅전 뒤 샘물 맛이 또 그렇게 좋다고 하네요. 대웅전 뒤로 돌아가 친구와 마셔보니 일반 생수와 맛이 다르더군요. 달짝지근한 맛이 산행에 지친 나그네의 갈증을 풀어줍니다.
좌성사는 가을에 가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좌성사부터 아래로 이어진 임도길이 단풍나무라 단풍터널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터널... 정말 아름다울 겁니다.
왜냐하면 좌성사부터 아래로 이어진 임도길이 단풍나무라 단풍터널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터널... 정말 아름다울 겁니다.
내려오면서 조만간 서운산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령으로 가는 길에 들렀기에 시간이 없어 서운산성,탕흉대, 바우덕이 묘와 사당을 보지 못해 그곳들을 들러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우덕이 묘와 사당을 꼭 가보고 싶은데요, 바우덕이는 최초이자 최후의 남사당 여성 꼭두쇠로 공연 기술이 대단했다는 전설적인 인물인데요,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5세에 남사당에 들어갔고, 15세에 무리를 이끄는 ‘꼭두쇠’가 되었지만 22살 때 폐병으로 짧을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안성시가 매년 가을 바우덕이사당에서 바우덕이 추모제를 연다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산을 찾아왔는데 걷기는 가을, 그 시간 속을 걸었습니다.
바스락거리며 발 밑에서 바스러지는 지난 시간들...
걸음 걸을 때마다 낙엽처럼 뒤처져 말라가는 아쉬움들....
ㅡ 찾지 않았다면 서운했을 40대의 마지막 가을 안성 서운산.
걸음 걸을 때마다 낙엽처럼 뒤처져 말라가는 아쉬움들....
ㅡ 찾지 않았다면 서운했을 40대의 마지막 가을 안성 서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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