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보령문화의 전당안에 있는 보령 박물관입니다.
방송작가로 KBS에서 ‘TV쇼!진품명품’이란 프로그램을 7년정도 했던 터라 지방 여행을 가면 옛날 유물들을 만나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데, 보령을 찾았으니 보령 박물관도 가봐야죠. 하지만 사실 약간의 선입견은 있었습니다. 국립박물관도 아닌 지역의 박물관이라면 그저 그럴 것이다. 전시품이라고 해 봐야 모조품에, 그것도 그리 많지 않은 전시품들이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을 돌고 나오면서 그 생각이 아주 잘못됐구나 알았습니다. 국립박물관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작지만 알찬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보령 박물관을 함께 돌아보실까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물을 먼저 볼 수 있는데요, 보령에서 본격적인 유물발굴조사가 벌어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이지만 그 조사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면 고인돌을 만드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인돌하면 고창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신데 보령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령이 오석을 비롯한 돌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곳곳에 고인돌이 많다고 하는데, 보령에서 고인돌을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 지도에는 다섯 곳만 표시되어 있지만 10여 곳이 넘고, 조사결과 3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보령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고인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평라리에서 발견된 고인돌로 땅 속에 돌로 구획을 만들어 무덤이라는 표식을 해 놓은 형태. 학계에서도 처음 발견된 것이라 보령 평라리식고인돌로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령댐이 생기면서 수몰되고 말았다 하니 정말 아쉬웠습니다.
박물관투어를 지루해 할 지 모를 아이들을 위한 배려, 고인돌 줄 당기기. 아이들이 좋아할 것같습니다.
박물관 전시는 시간의 흐름대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선사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지나면 백제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보령리 고분군의 굴식돌방무덤을 재현해 놓은 것. 보령리에 분포한 60여기 고분 중 12기가 1984년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돌로 만든 방 석실묘는 무덤의 주인이 힘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듬지 않은 돌은 초기 백제무덤임을 알려주는 힌트입니다. 백제 후기로 갈수록 다듬은 돌로 돌방을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보령리 3호고분에서 인골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인골은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발굴 때 인골 주위에 놓여있던 유물이 이렇게 실물로 전시돼 있습니다.
백제의 전형적인 토기인 삼발이 토기, 삼족기도 있고, 철로 된 검도 보입니다. 철로 된 검이 있다는 것은 그 무덤의 주인이 상당히 힘이 있던 사람. 그러니까 백제시대, 보령에 힘 있는 유력자가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로 넘어오면 보령 성주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크기를 작게 해 볼 수 있게 만든 성주사지탑을 볼 수 있습니다. 성주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통일신라 시대 사람의 전형적인 얼굴상일까요? 얼굴 모양의 토기와 흙으로 밎어낸 몸통과 와당. 세련되진 않지만 오히려 투박한 것이 더 정감있는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그리고 성주사가 어떤 사찰이었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대형화면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사찰의 규모와 왜 지금은 터와 탑, 비만 남아있는지 쇠락과정을 입체감있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고려청자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럼 고려시대 강진외에 보령에도 고려청자를 굽는 가마가 있었던 것일까요? 알고보니 강진 등에서 만든 청자를 개성까지 실어 나르다보니 폭풍우나 암초를 만나 배가 보령 앞바다에서 침몰한 경우가 있었겠죠? 그 청자들이 바다속에 있다가 건져 올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청자들을 건져올린 죽도 앞바다는 신안 앞바다처럼 조사외 활동을 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버드나무 아래 오리가 노니는 그림을 그린 흑백상감청자.
그런데 여기 전시된 청자 접시에는 기사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것이 3점이나 됩니다.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 청자들이 만들어진 해가 기사년임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로 오면 충청수영의 옛 그림이 보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사진기가 없던 시대, 그림을 그리는 화원들을 불러 사진처럼 남긴 것. 나중에 충청수영을 찾아가 이 그림과 비교를 해 봐야겠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충청수영성은 전라, 경상 좌우영과 비교할 때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보령시의 노력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또 보령이 낳은 선비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유품들은 후손들의 기증을 받아 전시를 한다고 하는데, 보령박물관에서는 올해 상반기중에 기증받은 유물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보령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물품도 볼 수 있습니다.
보령 박물관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바로 이곳. 시간의 길 너머 있는 곳입니다.
시간의 길은 철로 위에 유리를 깔고 벽면엔 보령의 과거 사진들을 전시해 놨는데,
이 길을 걸어 터널을 지나자니 시간을 거슬러 가는 기차가 된 기분입니다. 걸어가면 실제로 기차의 기적소리도 들리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철로를 깐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보령 박물관이 있는 장소가 과거 대천역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라는데요, 지금 박물관이 있는 장소가 대천역광장, 그리고 지금의 광장이 대천역이 있던 장소라고 합니다.
대포집에선 뿌연 연기속에서 왁자지껄 한 잔 기울이며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같고, 주인 아주머니의 환한 웃음도 정겹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 같이 어울려 대포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당시의 달력과 그때 그 술병들, 그 물품들을 어떻게 구하고 그 분위기까지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지 정말 반가웠습니다. 이런 정겨운 곳을 만들어 놓은 보령 박물관의 생각도 고맙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60년 연기인생 동안 약 400여편의 작품을 했다고 하는데, 박물관에서 옛날 여배우에 대한전시공간을 마련해 놓은 것도 참 특이했습니다.
이곳엔 복혜숙 선생 육성이 담긴 영화노래 레코드판도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이겠죠? 그리고 이 방에선 영상도 짧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령에서 태어나고 묻힌 토정 이지함 선생의 방이 마련돼 있습니다.
백성이 부자가 되어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믿은 보령의 참 지성인 토정 이지함 선생의 영정과 선생이 받은 교지, 토정비결을 보고 또 준비되어 있는 영상을 보며 선생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중에도 궁금한 점에 대해 답해주고 전시 유물 해설을 해 준 장래형 보령 박물관 학예연구원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문화재, 유물은 말 못하는 아름다운 벙어리 기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맞지 않는 것같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은 말 못하는 벙어리 기생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들이 속 안에 담고 있는 사연이 얼마나 많을까요?
박물관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시면 잠시 서서 그들이 하려는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5천년 역사를 가진 민족, 우리는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문화는 힘이고 역사를 가진 이들의 저력. 제가 보령 박물관에서 본 것은 보령 문화의 저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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