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돌이 들려준 이야기

보령시 웅천읍입니다. 여기 저기 곳곳에 쌓여있는 돌들이 많이 보이죠?
보령시 웅천읍은 석재산업이 유명한 곳으로 우리나라 근대화 산업화에 한 몫을 담당한 지역그런 웅천읍의 역사와 특성을 잘 살린 공원이 있으니 바로 웅천돌문화공원입니다
돌문화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실내 전시장인 석재전시관과 야외전시장이 나옵니다.

먼저 석재전시관을 찾았습니다.
전시장 입구에 대형 벼루가 찾아온 이를 맞습니다.
유명한 남포오석 벼루입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문화유산을 만들어 온 석재문화에 대한 설명부터 보령이 자랑하는 오석의 채취과정, 가공 방법에 대해서도 잘 볼 수 있습니다.

보령오석은 보령의 특산품이죠.
다른 암석에 비해 강도가 강하고, 흡수율이 낮아 풍화에 강한 것이 특징.
표면에 특유의 검은 유리광택이 있고, 글자를 새기면 흰 조흔색이 나타나 글자가 잘 보이며 이끼같은 지의류가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령 오석은 왕릉과 대통령의 비석에 쓰였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오석은 암석 사이에서 고구마처럼 발견 된다는데그 중 20%만이 질 좋은 오석으로 비석과 벼루, 공예품 등 다양한 예술품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1층에서 재미있는 곳은 탁본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실입니다.
예전부터 탁본 체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나중에 이곳을 다시 찾으면 아이들과 탁본을 해보면서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층 전시관입니다.
보령 오석 남포벼루의 멋을 느껴 볼 수 있는 곳.
조선시대, 남포벼루가 얼마만큼 인기였는지는 남포 보령의 오연석이 우리나라 제일이다. 중국에도 이름이 나 있다라고 한 오주연문장전산고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남포석은 조선 후기 벼루 공급의 70%를 차지했다고 하는데요만약 벼루가 없었다면 조선의 정신문화가 싹틀 수 없었을 터그렇다면 보령이 조선의 정신을 만든 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벼루가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알까요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용도가 궁금하겠죠?

전통의 모습을 한 벼루들과 함께 작가들이현대감각으로 만들어 놓은 오석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갤러리는 주로 기획전이 열리는 곳
제가 찾았을 때는 윤한수 작가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야외전시장에 나가면 군데군데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누이라는 제목의 작품.

환하게 웃으며 동생을 업어주려 하는 누이를 보고 있자니 우리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장에 다녀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생이 보채자 동생을 달래려 엄마 마중 나가자며 동생을 업는 누이와 동생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합니다.
누나. 엄마 어디쯤 왔을까?”
저기만큼...”
엄마가 맛난 과자 사올까?”
이런 대화가 오고가고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이런 오누이의 모습... 찾아보기 힘들죠?
그저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풍경입니다
그리움이라는 작품.
얼굴을 만들었는데 눈 한 쪽은 아예 조각을 않고 다른 한 쪽은 감고 있는 이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작품이 작고 둥근 입을 열어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내 이름이 왜 그리움이냐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돌아가잖아. 그 세상 속에서 늘 눈을 뜨고 있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 명예? 권력?... "
"......"
"딱한 사람... 그걸 보느라 당신들의 눈 중 이미 한 쪽은 퇴화되어버린 걸 모르지? 내 한 쪽 눈이 없게 만든 건 그 때문이야. 하지만 보는 눈을 잃어버린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자 작품이 또 말을 이어갑니다.
지금이라도 나처럼 눈을 감고 바라봐. 그렇게 내 안을 보아야 볼 수 있는 것... 그게 그리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니까.”
 

이렇게 돌문화공원은 혼자 찾아가는 것이 공원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될 듯합니다.
왜냐하면 혼자 공원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생명 없는 돌덩이가 아니라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됩니다. 그저 휙 지나가지 말고 작품 앞에 서서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이쪽, 저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가져주신다면 말이죠.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웅천돌문화공원에서는 작품과 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죠. 이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든 것일까? 어떤 상징을 숨겨 놓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대화의 창이 열립니다.
윤회
보령오석 석공예 최고의 장인이자 충남 무형문화재 보령석장 제48호인 고석산 작가의 작품인데요 부처처럼 온화한 얼굴 아래 사슬이 보입니다. 몸통은 둥근 원으로 돌고 도는 운명의 굴레를 표현 한 것 같고, 배 안에는 한 생명이 잉태되어 있는데 몸과 엮어진 쇠사슬 역시 운명의 사슬로 묶여있는 것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까치호랑이
작품명을 보면 우리 민화 작호도에서 볼 수 있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모티브로 만든 듯한데,
이상합니다. 분명 제목은 까치호랑이인데 아무리 봐도 호랑이만 있고 까치가 없습니다.

제목을 그냥 호랑이라 하지 않고 까치호랑이라 지은 이유가 있을텐데...
한참을 생각하다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작가는 호랑이만 만들어 놓고, 실제로 까치가 호랑이 등 위나 작품이 있는 주변의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모습을 생각해 놓은 것이죠. 그러니까 실제 살아있는 까치와 자연까지도 작품으로 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라는 이 작품은
수 없이 많은 어로작업을 끝내고 포구에 놓여 은퇴한 폐선을 그려보게 됩니다.
어선은 이제 녹슨 시간의 닻을 내려놓고 그동안 쉬지 않고 자신이 달렸던 바다를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그리고 떠오르는 모습은 이제는 일을 그만두고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였습니다.
 생동이라는 작품입니다.
바위 속에 작은 풀 하나. 바위에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치열하게 생명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살아낸다는 것작가는 생동이란 제목을 붙이며 힘겨움 속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 삶이고, 그 런 삶이 생동감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요? 

작품명 자유
흑과 백으로 나뉜 다리를 봅니다. 정면에서 이 작품을 보고는 자유란 작품명은 작가가 2분법 적인 닫힌 생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보는 위치를 옮겨 위에서 내려다보니 발이 시계와 돈을 밟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걸 보니 작가는 닫힌 생각 외에도 시간과 돈, 물질만능의 시대로부터 벗어난 마음의 자유를 표현한 듯합니다
전망대입니다.
이곳에서 웅천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쌓여있는 돌들. 어쩌면 이 돌들은 운이 좋았습니다. 땅속에 묻혀있던 돌이 세상에 나와 잘라낸 석재가 되고, 그 돌이 작가의 손길을 받게 되어 비로소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시인 김춘수님은 그의 작품 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면 하나의 존재가 된다고 했는데
보령의 돌은 작가를 만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보령 웅천돌문화공원 야외전시장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고, 공연이 펼쳐지는 광장과 야외체험관, 그리고 정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또 백제시대의 돌무덤인 보령 구룡리 돌방무덤도 재현해 놓아 재미있는 볼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석재전시관 앞으로 다시 내려오니 깨진 항아리가 보입니다.
파각이라는 김용환 작가의 작품.
깨진 항아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돌로 표현했는데, 물은 식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누군가에겐 삶을 살게 하는 생명의 원천. 그런데 그런 소중함을 욕심으로 내 안에 채우기만하고 비울 줄 모르는 우리 모습, 그 욕심을 꼬집어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 마음을 비우자. 마음먹고 내려오는 길.
좋은 시들이 내려가는 이의 눈길을 잡습니다.
조금 비운 마음에 작은 울림을 만드는 시들...
어쩔 수 없이 또 욕심이 생겨
비우고 오는 마음에 또 한 편의 시를 담고 오고 말았습니다. 

보령 웅천돌문화공원을 찾은 이는 많은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한 소리 없는 대화들...
그리고...
그곳에서 대화를 나눈 또 다른 이는 저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보령 웅천돌문화공원은 월요일, 명절연휴, 11일 휴무이고, 이용요금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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