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서정원.
인터넷에 제 이름을 쳐서 검색해보면 먼저 축구선수였던 서정원감독이 나오고 그 다음 나오는 것이 ‘별서정원’이었습니다. ‘별서정원’이란 게 뭘까? 궁금해 찾아보니 ‘별서’란 저택에서 떨어진 인접한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자연을 즐기며 은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든 제2의 주택. 별장과 비슷한 의미로 그러니까 ‘별서정원’은 출세를 접고 은둔해 살고자 살림집과 떨어진 곳에 지은 별채에 딸린 정원을 말합니다.
호남에는 조선시대 ‘별서정원’이 세 곳 남아있는데,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 그리고 강진의 ‘백운동정원’입니다. 보길도 부용동에 이어 담양 소쇄원은 이미 들러보았고 이번에 강진을 들러 ‘백운동정원’을 찾아보았습니다.
백운동정원을 찾아가는 길은 안운주차장에서 주차하고 동백터널을 지나 찾아가거나 위쪽 백운동다원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오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저는 안운주차장쪽에서 올라가기로 합니다.
주차장에 있는 ‘백운동정원’의 안내도를 보니 특이하게 조선시대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다산 정약용선생이 1812년 제자들과 월출산을 찾았다가 백운동정원에서 하루 묵게 되었을때 이곳의 아름다움에 취해 풍광을 시로 쓰고 그림은 초의선사에게 그리게 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12개의 번호가 붙어있는데요, 이것이 백운동 12경. 정약용선생이 백운동 12경중 8편을 쓰고 초의선사가 3수, 제자 윤동이 1수를 써 총 14수의 시를 썼다고 합니다.
백운동정원은 정말 비밀의 정원처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인데, 2001년 ‘백운세 수첩(白雲世守帖)’이라는 문헌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폐화되어있던 것을 강진군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사랑채, 정자각, 솟을삼문을 정비, 복원한 것입니다.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터널을 이룬 곳을 지나면 백운동이란 글씨를 새긴 바위가 나옵니다. 백운동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입구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백나무 숲의 작은 길이 백운동 12경중 2번째인 산다경 (山茶徑)입니다. 산다, 유차는 동백나무의 별칭인데, 동백이 흐드러지게 핀 3월에 찾으면 붉게 핀 동백터널을 지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백운동바위를 지나면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는데, 그 아래가 백운계곡.
이곳이 제 4경 홍옥폭(紅玉瀑)입니다. 폭포물에 단풍나무의 붉게 물든 단풍이 비치면 물색이 마치 홍옥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쉬운 건 물이 말라 거의 흐르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백운동의 4경을 제대로 보려면 가을철 비가 많이 온 다음날, 단풍이 제대로 물들었을 때 찾으시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곳에서 고개를 들면 우뚝 솟은 작은 바위 절벽이 보이는데, 이곳이 제 6경인 창하벽(蒼霞壁)입니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시에서 이곳에 붉은색 먹으로 글자를 써두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6번 아래 글씨가 보이죠? 물론 지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백운동정원의 제 10경은 풍단(楓壇). 창하벽위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심어진 단으로 가을이면 단풍 잎이 붉은 비단 커튼을 둘러친 것 같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럼 이제 정원으로 들어가볼까요?
들어가면 우선 연못이 눈에 들어오는데, 특이한 것은 계곡물을 끌어들여 정원을 굽이굽이 돌고 나가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제 5경 유상곡수(流觴曲水). 여기서 ‘유상’이란 물길 위로 술잔을 흘려 띄운다는 말. 그러니까 배 모양의 잔 받침을 놓고 술잔을 띄워 보내며 술을 마셨나봅니다.
“담장을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고개를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어쩌다 온 두 세분 손님이 있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꽃 향기 가득한 봄 날 물을 타고 온 술잔의 술을 들어 마시면 그 맛이 어땠을까요?
일반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이곳 백운동정원이 유일하다고 하니 이곳을 만든 주인장은 꽤 멋스러운 이었을 것같습니다.
이 곳을 만든 이는 처사 이담로(李聃老·1627년~1701년). 그가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만년에 손자 이언길을 데리고 들어와 살면서 부터로 백운동정원을 만든 이담로 처사는 세상을 뜰 때 “절대로 남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고, 지금까지 원주 이씨가문에서 12대에 걸쳐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그 중 이시헌은 강진에 귀양와 있던 다산 정약용의 막내 제자가 되어 이곳에 정약용선생과 초의선사등을 초대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백운동그림을 그리게 된 것입니다.
제9경은 취미선방(翠微禪房)으로 산허리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입니다.
본채 아래 초가지붕의 세 칸짜리 사랑채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약용 선생과 주인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바람이 대나무에 스칠 때 그 소리를 해칠까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며 차향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말이죠.
그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대나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옆에 대나무숲이 있기때문. 이곳이 제 12경 운당원(篔簹園)인데요, 늠름하게 서 있는 왕대나무 숲이 지금도 잘 보존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이곳에 앉아 철마다 따로 피는 모란과 매화를 감상했을 것 같습니다.
제 8경은 모란을 심은 화단인 모란체(牧丹砌). 그림에서는 모란을 그리지 않았는데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릴 당시 모란이 피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니면 화면 구도상 그런 것일까요?
또 제 3경인 백매오(百梅塢). 언덕에 100그루의 매화가 심어져 있었다는데 그림에는 붉게 핀 홍매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림에 있는 기와집은 아직 복원이 안되어 있는데 2018년까지 복원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별서정원을 나와 앞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이 언덕이 제 7경. 정유강(貞蕤岡) 용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가 있는 언덕입니다.
올라가 보니 정말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덕위에 있는 정자는 백운동정원의 제 11경. 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창하벽위의 정자 정선대(停仙臺)입니다.
정선대에 올라서 보면 옥판봉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 월출산 옥판봉이 제 1경입니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옥판봉을 다산 정약용선생이 백운동의 첫 번째로 손꼽는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정선대에서 본 백운동정원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비밀의 정원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차문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입니다.
2006년 차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 전문 서적인 '동다기' 필사본이 발견돼 우리나라 차문화 발상지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가 2006년 물어 물어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 12대째 이곳을 지켜온 주인 이효천 옹이 적대적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상에 정민교수가 쓴 책 두 권이 있어 이거 제가 쓴 책이네요. 했더니 그 다음부터 정민교수를 알아본 주인은 온갖 자료를 다 보여줬다는 것이죠. 그러다가 주인이 초서로 된 책을 보여주며 뭔지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이 책이 바로 전설의 차 관련 서적 ‘동다기’필사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논문으로 발표하자 차 관련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또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시판차 ‘백운옥판차’의 배경이 된 곳으로 우리나라 차 문화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100여년 전 이한영 선생이 최초로 차를 상품화한 ‘백운옥판차’와 ‘금릉월산차’ 를 출시했는데, 일제강점기 사라져가던 국산차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백운동정원은 자연과 어울린 전통 정원이기도 하지만 역사가 담겨있는 정원입니다. 혹시 강진을 찾게 되시면 월출산자락의 백운동정원을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무위사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곳이니 무위사를 둘러보시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찾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가는 길 내내 차밭과 월출산을 보실 수 있어 기분도 상쾌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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