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유명한 사찰 쌍계사를 찾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사찰이라 그동안 쌍계사에 대해 듣기는 많이 들었으되,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곳. 그래서 설렘이 컸습니다.
쌍계사는 724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정상을 모시고 와 절터를 잡았는데, 꿈에서 그 자리가 아니라 지리산 계곡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다시 터를 잡은 것이 그 시초. 그 후 840년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온 진감국사가 와 가람을 중창, 절 주위에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심어 옥천사로 했다가 지리산에 다른 옥천사가 있어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속세를 떠나 쌍계사로 들어가기 위해선 여러 문을 거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야 하는 곳은 일주문. 그런데 쌍계사 일주문은 모양이 참 독특합니다. 옆 면이 여덟팔 자 모양의 팔작지붕 지붕인데 아주 크죠? 역삼각형으로 사람으로 치면 가분수 모양입니다.일주문은 원래 기둥을 한 줄로 양쪽에 하나씩 세워서 일주문이라 한다는데, 여기는 보조기둥까지있습니다. 후대에 세워진 일주문들은 이렇게 세우기도 한다는군요. 이 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인조 19년, 1641년에 다시 짓고, 다시 1977년에지금 쌍계사의 방장스님이신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벌써 40년 세월이 흘렀네요.
그런데 현판을 보면 지리산이 아닌 삼신산 쌍계사로 되어 있습니다. 일주문엔 사찰의 격이나 이름을 나타내는 현판을 거는데, 삼신산은 지리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예로부터 영산으로 숭배된 곳, 그러니까 지리산이라 하기보다 삼신산으로 하여 좀 더 큰 의미를 갖는 사찰이라는 자부심을 보인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쌍계사란 이름은 사찰 옆으로 두 개의 개울, 계곡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그런데 현판을 살펴보다 보니 쌍계사의 ‘계’자가 특이합니다. 돌 석자 부수를 쓰고 있기 때문인데요, 왜 ‘계곡 계(嵠)’자나 물수 변의 시내 계(溪) 자를 쓰지 않고 돌 석자를 쓴 시내 계(磎) 자를 썼을까요? 문화해설사이신 김지원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바위 아래에도 물이 흐른다 해서 그 글자를 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주문의 기둥에 적힌 글, 주련을 보면
入此門內莫存知解
無解空器大道成滿
“이 절의 일주문 안에 들어서면 누구든 중생심으로 안다고 말하지 말고,
중생심을 버린 텅 빈 마음에는 깨달음이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 그릇처럼 마음을 비워야 큰 도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入此門內莫存知解
無解空器大道成滿
“이 절의 일주문 안에 들어서면 누구든 중생심으로 안다고 말하지 말고,
중생심을 버린 텅 빈 마음에는 깨달음이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 그릇처럼 마음을 비워야 큰 도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이 나옵니다. 금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가 있는 곳.
이 건물도 1979년 고산스님이 중수했는데,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쌍계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건물도 1979년 고산스님이 중수했는데,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쌍계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금강역사 옆에는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와 푸른 사자를 타고 있는 지혜의 상징 문수동자가 있습니다. 코끼리는 중생교화를 의미하는데요, 그런데 여기에도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코끼리와 사자. 머리를 보면 사자는 사찰 밖을 향하고 있는데 코끼리는 사찰 안쪽을 향해 있습니다. 이렇게 반대로 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수동자는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동자는 실천의 상징인데, 실천만 너무 강조하면 지혜를 놓치기 쉽고 지혜만 추구하면 실천을 놓치기 쉬워 그 틈을 비우고 실천, 지혜를 같이 하게 하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을 해 놓았다고 합니다. 또 사찰을 들렀다가 다시 속세의 가정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코끼리의 얼굴을 먼저 보아 실천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대나무가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세파에도 굽히지 않고 하늘로 뻗어있는 대나무.
대나무밭에 들어가 하늘을 보니 그동안 이곳에서 수행한 이들이 닮고자 했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나무밭에 들어가 하늘을 보니 그동안 이곳에서 수행한 이들이 닮고자 했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통과해야 할 곳은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상이 있는 곳.경남 유형문화재 214호로 지정된 단아한 모습의 건물로 역시 70년대 말 중수된 건물입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쌍계사 구층 석탑이 찾은 이들을 맞습니다.이 탑...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과 비슷한 형태입니다.1990년 세워진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에서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모셔온석가여래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연한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탑이 세워지는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고산스님은 원래 화개장터에 있는 화개우체국 뒷마당의 3층 석탑을 쌍계사로 이전하고자노력을 기울였는데, 문화재청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래. 나는 그보다 몇 배 더 좋은 탑을 세울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탑을 만들 비용. 그런데 한 부부 불자가 막내딸의 예능계 합격을 기도해 달라 해서 내 기도를 열심히 해서 시험 합격 시켜줄 테니 그러면 탑을 세워달라고 했고, 결국 합격해서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욕심을 내서 월정사 9층 석탑과 똑같이 하되 높이는 월정사 탑보다 1자 더 높게 해달라고 해 더 높은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탑이 세워지는 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고산스님은 원래 화개장터에 있는 화개우체국 뒷마당의 3층 석탑을 쌍계사로 이전하고자노력을 기울였는데, 문화재청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래. 나는 그보다 몇 배 더 좋은 탑을 세울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탑을 만들 비용. 그런데 한 부부 불자가 막내딸의 예능계 합격을 기도해 달라 해서 내 기도를 열심히 해서 시험 합격 시켜줄 테니 그러면 탑을 세워달라고 했고, 결국 합격해서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욕심을 내서 월정사 9층 석탑과 똑같이 하되 높이는 월정사 탑보다 1자 더 높게 해달라고 해 더 높은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탑 뒤로 통일신라 840년 진감선사가 세웠다는 팔영루가 있습니다. 팔영루라는 이름은 진감선사가 8음률로 불교음악을 작곡해서 붙여진 이름. 그러니까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을 만든 장소이고, 범패의 명인을 교육한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감선사는 어떤 것을 보고 8음률의 불교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물고기입니다. 선사가 어느 날 섬진강의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그것을 보고 곡을 만들었고 그래서 ‘어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감선사는 어떤 것을 보고 8음률의 불교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물고기입니다. 선사가 어느 날 섬진강의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그것을 보고 곡을 만들었고 그래서 ‘어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원래는 이 팔영루도 아래 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갈 수 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놓아옆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일주문에서 보면 대웅전까지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팔영루에 물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생기면서 문이 닫혔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대웅전의 부처님을 볼 수 있게 한 의미가 있을 터인데... 닫힌 문이 아쉽습니다.
원래는 이 팔영루도 아래 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갈 수 있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놓아옆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는 일주문에서 보면 대웅전까지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팔영루에 물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생기면서 문이 닫혔다고 합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대웅전의 부처님을 볼 수 있게 한 의미가 있을 터인데... 닫힌 문이 아쉽습니다.
닫혀있는 팔영루 옆에 범종루가 있습니다. 범종루에는 4가지 사물이 있는데,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범종, 물속 중생을 제도한다는 목어, 축생을 제도하는 법고,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운판입니다.
그런데 큰 북인 법고는 스님이 그냥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심(心) 자로 두드린다고 하네요. 그러니 새벽, 저녁시간 스님이 법고를 치실 때 진짜 그런가 아닌가 보면서 그 소리를 듣는다면 더 좋겠죠.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큰 북인 법고는 스님이 그냥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심(心) 자로 두드린다고 하네요. 그러니 새벽, 저녁시간 스님이 법고를 치실 때 진짜 그런가 아닌가 보면서 그 소리를 듣는다면 더 좋겠죠.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범종루 옆으로 긴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금당이 나옵니다. 쌍계사는 크게 두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금당 영역과 대웅전 영역입니다. 금당 영역은 진감선사에 의해 이뤄진 공간으로 남향을, 대웅전 영역은 서쪽을 향해 있어 독특한 배치구도를 하고 있습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칭하는 말로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도 하며원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의미하는데, 쌍계사의 금당 영역은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을 봉안하고 금당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쌍계사 금당은 추사의 현판 글씨도 볼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실내에 부처님 대신 7층 석탑을 모신 국내 유일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건물 내부에 모신 육조정상탑을 세 바퀴 돌고 탑 뒤 편에 손을 넣어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뿔싸. 알고 보니 하안거 100일, 동안거 100일은 스님들이 수행하시느라 문을 닫아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조정상탑과 추사의 글씨를 보는 것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참고로 동안거기간은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이고, 하안거 기간은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칭하는 말로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도 하며원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의미하는데, 쌍계사의 금당 영역은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을 봉안하고 금당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쌍계사 금당은 추사의 현판 글씨도 볼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실내에 부처님 대신 7층 석탑을 모신 국내 유일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건물 내부에 모신 육조정상탑을 세 바퀴 돌고 탑 뒤 편에 손을 넣어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뿔싸. 알고 보니 하안거 100일, 동안거 100일은 스님들이 수행하시느라 문을 닫아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조정상탑과 추사의 글씨를 보는 것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참고로 동안거기간은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이고, 하안거 기간은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대웅전을 찾아갑니다. 금당 영역 외의 공간인 대웅전 영역은 쌍계사 제 2중창주라 할 수 있는 벽암스님에 의해 만들어진 영역.
대웅전 계단을 올라가기 전 쌍계사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유물이 보입니다.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탑비입니다. 신라 말 진감선사 해소의 덕을 기려 887년 진성여왕 1년에 세운 탑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썼다고 합니다.
대웅전 계단을 올라가기 전 쌍계사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유물이 보입니다.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 탑비입니다. 신라 말 진감선사 해소의 덕을 기려 887년 진성여왕 1년에 세운 탑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글을 짓고 썼다고 합니다.
가까이 가서 글씨를 보니 정말 글씨가 아름다운 명필입니다.
그럼 어떤 내용이 쓰여있을까? 그 내용이 궁금해 책을 구해 보았습니다.
내용 중에는 진감선사의 소박한 삶을 이야기 한 부분이 있습니다.
“도토리와 콩을 섞은 범벅에 나물 반찬도 두 가지. 귀인들이 찾아와도 다른 반찬이 없었다. 거친 음식이라 올리기 어려워하면 ‘마음이 있어 여기에 왔을 것이니 비록 거친 밥인들 무엇이 해로우랴“ 지위가 높은 이나 낮은 이 대접함이 한결같았다.”
이것은 왕의 명을 전하는 사자가 와도 똑같았다고 합니다.
“어쩌다 향을 선물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냄새가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마음만 경건히 할 뿐이다.’라고 하였고, 차를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루로 만들지 않고 끓이면서 말하기를 ‘나는 맛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뱃속을 적실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평소 범패를 잘하여 그 목소리가 금옥 같았다. 구슬픈 곡조에 날리는 소리는 상쾌하면서도 슬프고 우아하여 능히 천상계의 신불을 환희하게 하였다. 길이 먼 데까지 흘러 전해지니 배우려는 사람이 당에 가득 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산’의 묘음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다투어 콧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하동 차의 기원을 적어 놓기도 했고, 또 선사가 작곡한 8음률의 불교음악 ‘어산’에 대한 내용도 나옵니다. 그리고 쌍계사란 절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절이 자리 잡은 곳을 살펴보게 하니 절 문이 두 줄기 시냇물이 마주하는데 있었으므로 이에 제호를 하사하여 쌍계라 하였다.” -참조: 지리산권의 금석문. 김아네스 편, 순천대학교 지리산권 문화연구원.
하지만 탑비를 보면 깨진 부분도 있고, 군데군데 총탄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과 토벌대의 총격으로 남겨진 흔적이라고 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럼 어떤 내용이 쓰여있을까? 그 내용이 궁금해 책을 구해 보았습니다.
내용 중에는 진감선사의 소박한 삶을 이야기 한 부분이 있습니다.
“도토리와 콩을 섞은 범벅에 나물 반찬도 두 가지. 귀인들이 찾아와도 다른 반찬이 없었다. 거친 음식이라 올리기 어려워하면 ‘마음이 있어 여기에 왔을 것이니 비록 거친 밥인들 무엇이 해로우랴“ 지위가 높은 이나 낮은 이 대접함이 한결같았다.”
이것은 왕의 명을 전하는 사자가 와도 똑같았다고 합니다.
“어쩌다 향을 선물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냄새가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마음만 경건히 할 뿐이다.’라고 하였고, 차를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루로 만들지 않고 끓이면서 말하기를 ‘나는 맛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뱃속을 적실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평소 범패를 잘하여 그 목소리가 금옥 같았다. 구슬픈 곡조에 날리는 소리는 상쾌하면서도 슬프고 우아하여 능히 천상계의 신불을 환희하게 하였다. 길이 먼 데까지 흘러 전해지니 배우려는 사람이 당에 가득 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산’의 묘음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다투어 콧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하동 차의 기원을 적어 놓기도 했고, 또 선사가 작곡한 8음률의 불교음악 ‘어산’에 대한 내용도 나옵니다. 그리고 쌍계사란 절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절이 자리 잡은 곳을 살펴보게 하니 절 문이 두 줄기 시냇물이 마주하는데 있었으므로 이에 제호를 하사하여 쌍계라 하였다.” -참조: 지리산권의 금석문. 김아네스 편, 순천대학교 지리산권 문화연구원.
하지만 탑비를 보면 깨진 부분도 있고, 군데군데 총탄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과 토벌대의 총격으로 남겨진 흔적이라고 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이 탑비의 위치와 방향. 대웅전에서 보면 이 탑비는 옆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약간 틀어진 각도로 말이죠. 대개 탑은 대웅전 앞에 바로 놓여 있기 마련인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탑비가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이라 조선시대에 세워진 대웅전이 아닌 금당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탑비를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올라갑니다. 대웅전은 보물 제500호.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안에는 세 분의 좌불, 석가모니불과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과 네 분의 보살 입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대개 석가모니 부처님과 협시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약사여래불은 일광, 월광보살,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해 ‘삼세여래 육광보살’이라고 하여 조선시대 크게 성행했다는데 쌍계사는 네 분의 보살을 모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세 분의 좌불 중 나무가 아닌 종이로 만들었음을 알게 된 불상이 있다는데요, 어느 부처님일까요? 한 번에 맞히면 올해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더군요.참고로 저는 한 번에 맞췄습니다. 답은...
그런데 최근 이 세 분의 좌불 중 나무가 아닌 종이로 만들었음을 알게 된 불상이 있다는데요, 어느 부처님일까요? 한 번에 맞히면 올해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더군요.참고로 저는 한 번에 맞췄습니다. 답은...
소원을 비시라고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쌍계사 대웅전 옆에는 명부전이 있는데, 명부전 옆에 또 쌍계사의 유명한 부처님이 계십니다. 머리가 크고 어깨까지 쳐진 귀가 독특한 정겨운 모습의 쌍계사 마애불.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요, 당시 이 부처님을 만든 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바위를 쪼았을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살짝 웃으신다고 합니다. 시간을 맞춰서 오면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언제일까요?
바로 오후 3시라고 합니다. 3시경 햇살이 비칠 때 옆에서 보면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보인다고 하니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겠죠?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요, 당시 이 부처님을 만든 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바위를 쪼았을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살짝 웃으신다고 합니다. 시간을 맞춰서 오면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언제일까요?
바로 오후 3시라고 합니다. 3시경 햇살이 비칠 때 옆에서 보면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보인다고 하니 쌍계사를 찾을 때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겠죠?
그 밖에도 쌍계사를 찾기 좋은 타이밍은 음력 3월 5일부터 7일 사이인데요, 이때 보살 수계식이 있어서 9층 석탑 앞에 커다란 탱화가 걸리는데 그때 스님 열댓 분이 괘불을 모시고 와 힘을 합쳐 거는 모습도 독특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5월 야생차 축제 기간에 다맥 전수식이 있고, 중국 육조 혜능선사 정상 이운 행렬을 재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를 맞춰 오시면 더 많은 볼거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쌍계사를 찾을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찰이 갖고 있는 우리 문화를 보려는 마음일 것 같습니다. 국보와 보물 등 우리 중요 문화유산의 50%가 넘는 유물이 불교 유물입니다. 종교를 떠나 우리 문화와 역사를 보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절을 구경 오신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 중에 ‘똑같은 탑, 똑같은 불상... 절이 다 똑같지 뭐.’ 이런 말씀들을 종종 하시지만 사찰마다 건물이 다르고, 또 유물들이 다르고 또 담겨있는 이야기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하동 쌍계사를 찾으실 때 미리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보시거나 아니면 현장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시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배우고, 또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시간 만드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절을 구경 오신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 중에 ‘똑같은 탑, 똑같은 불상... 절이 다 똑같지 뭐.’ 이런 말씀들을 종종 하시지만 사찰마다 건물이 다르고, 또 유물들이 다르고 또 담겨있는 이야기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하동 쌍계사를 찾으실 때 미리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보시거나 아니면 현장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시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배우고, 또 자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시간 만드셨으면 합니다.
쌍계사를 찾으실 때 가장 중요한 건 뭐?
타이밍, 그리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타이밍, 그리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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