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박경리 문학관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옛날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전통농업문화전시관이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박경리 문학관으로 바뀌어 있네요.
2016년 5월에 개관했다고 하는데, 소설 '토지'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곳을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 바로 옆이라 최참판댁과 함께 찾기 좋습니다.
박경리 문학관을 찾으면 누구나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눈앞에 펼쳐진 넓은 평사리 평야부터 보게 됩니다. 이곳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가 토지의 무대가 된 이유가 바로 이 평야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만석꾼의 토지란 전라도 땅에나 있고 경상도 안에서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평사리는 경상도의 어느 곳보다 넓은 들을 지니고 있었으며, 섬진강의 이미지와 지리산의 역사적 무게도 든든한 배경이 돼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문학관 안은 어떻게 꾸며놓았을까 궁금합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커다란 박경리 선생의 초상화가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커다란 박경리 선생의 초상화가 보입니다.
초상화 앞 진열대에는 선생이 쓴 돋보기와 친필 원고도 전시돼 있습니다.
선생이 토지를 완성한 것은 1994년. 그때 68세인 선생은 그 때 연대표를 놓고 돋보기로 꼼꼼하게 확인해가며 '토지'를 썼다고 합니다.
2008년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박경리 선생. 그가 썼던 돋보기를 보고 있자니 보이지 않는 글씨를 애써 보며 글을 쓰고 있는 노년의 박경리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이 토지를 완성한 것은 1994년. 그때 68세인 선생은 그 때 연대표를 놓고 돋보기로 꼼꼼하게 확인해가며 '토지'를 썼다고 합니다.
2008년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박경리 선생. 그가 썼던 돋보기를 보고 있자니 보이지 않는 글씨를 애써 보며 글을 쓰고 있는 노년의 박경리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시관 오른쪽을 보면 단체사진을 찍은 듯한 그림이 보입니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와 주변 인물들을 그려 놓은 것인데요, 그런데 서희의 모습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많네요. 저는 서희를 80년대 TV 드라마의 배우 최수지씨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어서...
87년 그때 배우 최수지씨는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희 역에 캐스팅되었다고 하죠.
87년 그때 배우 최수지씨는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희 역에 캐스팅되었다고 하죠.
토지인물관계도는 소설‘토지’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보기 좋게 정리해 놓았는데요,
한 작가가 이렇게 많은 인물들의 삶과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또 놀랍습니다
한 작가가 이렇게 많은 인물들의 삶과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또 놀랍습니다
문학관은 ‘토지’ 1부부터 5부까지 시간대별로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69년 6월 집필을 시작해 94년 완성한 대하소설인데요,
동학혁명 후 서희가 간도를 가는 데까지가 1부. 2부는 1911년~1918년까지 간도에서 생활.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간도를 가 보신 적이 없다고 하죠? 그런데 어떻게 간도 이야기를 썼을까요? 문학관 해설을 해주시는 차정해 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께선 ‘간도의 사정’이라는 책을 보며 간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합니다. 그러니 글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상상력 또한 대단하신 분입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69년 6월 집필을 시작해 94년 완성한 대하소설인데요,
동학혁명 후 서희가 간도를 가는 데까지가 1부. 2부는 1911년~1918년까지 간도에서 생활.
그런데 박경리 선생은 간도를 가 보신 적이 없다고 하죠? 그런데 어떻게 간도 이야기를 썼을까요? 문학관 해설을 해주시는 차정해 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께선 ‘간도의 사정’이라는 책을 보며 간도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합니다. 그러니 글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상상력 또한 대단하신 분입니다.
벽에는 박경리 선생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노년의 모습까지 일대기를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어린 소녀 시절 어머니와 찍은 사진입니다.
선생께선 1926년 호랑이띠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여자애가 호랑이로 그것도 초저녁에 태어났으니 팔자가 셀 거다. 그러니 나중에 후처로나 시집을 가라는 이야기를 동네 어른들로부터 듣고 컸다고 합니다.
선생께선 1926년 호랑이띠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여자애가 호랑이로 그것도 초저녁에 태어났으니 팔자가 셀 거다. 그러니 나중에 후처로나 시집을 가라는 이야기를 동네 어른들로부터 듣고 컸다고 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운명 이야기 때문이었을까요? 박경리 선생은 1945년 해방되던 해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을 했는데, 6.25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나는 전쟁미망인이었다. 불행의 상징이다. 가난하고, 애 데리고, 부모 모시고,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소망이 있기에 써 온 것이다. 불행해서 탈출하려고...”
선생은 불행을 가져다준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었으니 그 결과 ‘토지’라는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 선생이 소설을 쓰게 된 또 하나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박경리 선생은 작가가 되기 전 교사 일도 하고, 신문사, 은행에도 다녔다고 하는데요, 은행에 다닐 때 사보에 내기 위해 시를 써 김동리 선생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동리 선생은 ‘너는 시보다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 해서 그 말을 듣고 소설을 쓰게 되었고, 1955년 ‘계산’이란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동리 선생은 본명이 박금이었던 박경리 선생에게 박경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사진의 오른 쪽 분이 김동리 선생, 그 옆 선글래스를 낀 분이 박경리 선생입니다.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 이는 또 있습니다. 바로 선생의 할머니였다고 하는데요, 할머니는 글도 모르고, 엄청난 구두쇠였지만 옛날이야기책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을 모아 글을 읽게 하고 그걸 사람들과 함께 들었다는데요, 어린 시절 선생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력을 키워갔을 겁니다.
전시장 한편에 놓인 나비장은 선생이 유일하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으신 유품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부친은 운전을 하는 차부였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집에 불이 나 모든 것을 태웠지만 그 집에서 이 나비장 하나만을 건졌고, 훗날 아버지로부터 이 장을 선생이 물려받았다는 것이죠.
선생은 남편과 아들을 잃고 딸 하나를 데리고 아프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기에 살 수 있었다고 했다죠. 그런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암 투병 중에서도 토지를 써 내려가게 했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 원고를 썼던 것이다.”(73년 토지 1부 자서전)
고통스러운 투병생활도 꺾을 수 없었던 선생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이제 선생의 손 때가 묻은 유품들로 남았습니다.
글을 쓰며 마신 커피잔과 그가 하루 세 번 꼬박 먹어야 하는 약 담는 약함까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선생이 커피를 옆에 놓고 글을 쓰고 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선생의 일대기와 유품을 보고 돌아나오면 토지의 3부부터 5부까지 작품이 실렸던 책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토지’는 1994년 8월 15일 탈고되는데, 1994년 8월 30일 ‘토지’의 마지막 연재글이 실린 문화일보와 토지 전집도 전시돼 있습니다.
문학관을 나와 선생과 꼭 닮은 동상을 다시 봅니다. 선생의 동상 받침에 새겨진 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2008년 4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옛날의 그집’ 이라는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2008년 4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옛날의 그집’ 이라는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치열한 삶...
그리고 마지막 순간엔 버리고 갈 것만 남기고 홀가분하게 가신 박경리 선생님.
이곳을 찾고 나니 욕심만 가득하게 살지만 말고 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곳을 찾고 나니 욕심만 가득하게 살지만 말고 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학관을 뒤로 하고 오는 길
뒤에서 박경리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같습니다.
"그래.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어?"
하동을 찾으시면 작지만 많은 이야기가 있는 박경리문학관을 찾아 그 분의 마음을 느끼고 또 가득 차 있는 마음을 조금 비워보시기 바랍니다. 더 크고 풍요로운 하동 여행이 되실 겁니다.